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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아틀란타행 비행기에서

 

둘째 아이 결혼식을 위해 아틀란타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습니다. 그 몇시간 여의 비행 시간 동안 저는, 지나 온 제 인생의 여정 속에 함께 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와 사랑을 곱씹으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그분의 은혜가 ~ 감사했어요.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모세가 이스라엘을 향해 외쳤던 선언은 곧 오늘 저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자로다.” 하나 하나 떠올려 보았어요. 어린 시절 늘 느끼고 있던 그분의 임재와 사랑의 손길들, 학창 시절과 신학교 시절 주셨던 은혜들, 강원도 목회, 캐나다와 미국 유학과 목회,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에서의 목회... , 성경에 나오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곧 저를 향한 그분의 은혜였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 보면 아직도 철이 안 든 것 같은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이제는 제 아이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언젠가 태어날 손주들과 함께 저도 철이 들겠죠. ^^

 

이번에 결혼하는 둘째 아이에 대한 감사도 자리했습니다. 그 친구가 태어나고 자란 탄광촌 태백은 행정 구역상으로만 도시였을 뿐, 실은 정말 심한 깡 시골이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면 황지에서 장성으로 가는 국도변의 문곡, 그 강변 도로 옆 축협 우유 공장 뒤에 있던 아무 것도 없던 곳의 (왜 그런 곳에 교회가?) 조립식 건물이 제가 목회를 했던 태백동부교회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그곳은 어느 정도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여타한 시설들, 학교, 병원, 가게 등등이 없는, 너무도 열악한 곳이었습니다. 물론 탄광촌 식구들과 씨름하던 목회는 나름 행복했지만, 엄마 아빠가 모르는 것이 많아 아이들은 홍역을 치뤘죠. 한 번은 아이의 병을 키워 장성 읍의 큰 병원에 입원도 했습니다. 심하게 아픈 후, 놀랍게도 제 아이는 환상적인 상꺼풀을 얻어 나왔어요. 돈 번 거죠. ^^ 캐나다로 유학과 목회를 떠난 아빠를 따라 시작한 아이의 학교 생활은, 미국의 켄터키와 텍사스를 거쳐 조지아에 있는 대학으로 이어졌어요. 처음 대학으로 떠나 보낼 때, “에모리 문과 여학생과 조지아텍 이과 남학생이 환상적인 커플이라더라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정말로 같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그렇게 연애를 하고 귀한 신랑감을 얻었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한 똑순이 둘째, 단 한 번도 엄마 아빠 마음 고생을 시키지 않고 자기의 인생 길을 개척해 준, 그 당찬 아이로 인하여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세번째는 우리 교우들에 대한 감사입니다. , 유니온 교회는 제 목회의 여정 중 가장 과분한 사랑을 입은 (입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처음부터 부족한 목사를 마음 활짝 열고 받아 주신 여러분들과 함께, 저는 그분이 있게 하신 곳, 이 웨스트 코비나에서 여러분과 함께 제 인생의 중년을 보내고 있습니다. 벌써 후배들이 물어요. “목회가 무엇입니까?” 저는 한껏 폼을 잡고 이렇게 대답하죠. “있게 하신 곳에서, 섬기라 하신 성도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라고요. , 저는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격려하며, 예배를 인도하고, 삶의 여정들을 함께 통과하며 살아 (나이를 먹어) 갑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막 태어난 신생아들을 만나고, 곧 돌 잔치와 유아 세례식, 인생의 시즌들, 결혼식과 각종 기념일들, 그리고 병원 심방과 장례식을 통과하며 하루 하루를 살아 가요. 유진 피터슨의 고백 처럼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이 곧 저에게는 목회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랑하고 사랑 받으며, 한 명의 구도자로 이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이 너무 좋아요. 이 기회를 통해, 부족한 종과 저의 가정에 베푸시는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에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 우리 집 둘째 딸 (새라)과 새롭게 맞는 둘째 사위 (마이클)를 축복하며 한 번 씩 기도해 주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