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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가장 뻔뻔한 청탁

 

이 세상에 가장 뻔뻔한 청탁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 상의 강도가 주님을 향해 그 인생의 마지막 순간 올려 드렸던 청탁이었습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 하소서.” 주님께서 대답하십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와아~ 충격입니다. 아니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 자리로 가서 훈수를 두고 싶을 정도입니다. “예수님 정말로 그러실 생각은 아니시죠? 저 강도요정말로 나쁜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렇게 마구잡이로 인생을 살아 놓고서 어떻게 그런 뻔뻔한 청탁을 할 수 있을까요? 못된 놈안 됩니다 주님! 저 부탁을 들어 주시면 정말로 혼동스러운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런 설명 없이 당신 은혜의 품으로 저를 품어 주십니다. 저를 포함하여 이후의 설교자들이 이 일을 설명하고 또 설교해야 하는데, 참으로 곤혹스럽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율법주의자 또는 의인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은 화부터 냅니다. 예수님께 주님, 이건 말도 안 됩니다!” 그리고 강도에게 그런 뻔뻔한 부탁을 취소하라!” 고 외치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지금 이 이야기가 강도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그 강도였는데, 내가 주님께 내놓을 것이 없었는데, 그걸 알면서도 말이 안 되는 청탁을 올려 드렸을 때, 뜻밖에도 주님 당신 은혜의 가슴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순간 천국의 문이 열리며 폭포수와 같은 하늘의 은혜가 쏟아져 내려옵니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 얼마나 형편 없든 상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상관 없습니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지만, 그저 눈 앞에 펼치진 당신의 은혜 앞에 꿇어 찬송을 부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은 그 강도에게 빚진 것이 없으셨습니다. 그를 위해 천국의 자리를 하나 더 마련하신다고 해서, 그가 주님께 해 드릴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간음하다 잡혔던 여인은 그래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뽕나무 위에서 주님을 만나 변화 되었던 삭개오는 그래도 돈이라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베드로 같은 배반자는 비록 공수표이기는 했지만 “내가 절대로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헌신의 발언이라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강도는 뭡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뭘 해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어요. 그런데도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혹시 여기서 아무리 그래도 나는 그 강도와는 조금 다른 부류의 사람입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분은요아직 머셨습니다. 그분은 아직 은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쯤에서 저는 설명을 멈춥니다. 대신 뻔뻔하게 활짝 웃습니다. 그리고 그저 그 죄인 된 자리에서 주님 사랑과 은혜를 받고, 내것 삼고, 또한 누리려 마음을 먹습니다. 주님께 뭔가를 해 드린 것이 전혀 없는데, 그런데도 저의 모습을 그대로 용납하시고 받아 주시는 주님의 은혜, 그저 입겠습니다. 얼마나 큰 위로인지요. 예수님은 저를 사랑하십니다. 제가 뭔가를 잘하는 목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매일 새벽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인품이 좋아서가 아니라, 헌금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그냥 당신의 사랑으로 저를 사랑하기로 작정 하셨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군가의 시선이 싸늘 할 때, 우리 힘듭니다. 그 때, 그분의 시선에 대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 하지만 그때, 예수님의 나를 향한 사랑을 생각하면 우리는 씨익 미소 지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이번 고난 주간을 우리 그렇게 맞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