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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더 중요한 것을 보는 사람

 

수개월 전, 엘에이에 있는 한 교회에서 일일 집회 요청을 해 왔습니다. 그 목사님과 평상시 친분이 있기도 해서 기쁨과 감사로 수락을 했고,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까 고민을 하는데, 며칠 후 목사님이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다시 전화를 하셨습니다. 당회를 했는데 본인들 교단과 다른 교단 목사님을 강사로 모시는 일에 대해 당회원들이 불편해 하더라는 겁니다. 물론 저는 괜찮다 했고 이해한다고 말씀 드린 후, 전화를 잘 마무리 했어요. 하지만 씁쓸한 감정은 지울 수 없더군요. , 우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분들 얼마든지 그러실 수 있죠. 하지만 엘에이에 아직도 그런 분들이 계시는구나자조 섞인 한탄이 제 안에 자리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분들을 이해하고 또 존중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큰 그림을 보실 수 있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됩니다.  

 

영국 윈스턴 쳐칠의 [회고록]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 중에 이런 이야기가 등장해요.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당시, 독일의 공습으로 인해 영국의 땅은 종종 불바다가 되곤 했습니다. 무지막지한 폭격 때문에 심지어 독일 포로들이 갇힌 수용소에도 폭탄이 떨어져 큰 피해가 생기곤 했어요. 하여 쳐칠 수상은 독일인 수용소를 안전한 곳으로 이전 하자는 안과 함께 예산 증원을 청원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당연히 의원들의 심한 반대에 부딪치죠. “아니 자기들 폭격에 자기들이 죽는 건데 그걸 그냥 놔두지, 엄청난 예산까지 들여 이전을 해? 어림도 없지아무도 동의하지 않아요. 하지만 처칠은 양보하지 않습니다. 긴 줄다리기 회의가 계속되고, 끝까지 소신을 지킨 쳐칠은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 마침내 의원들의 동의를 얻어 냅니다. 그 순간 저가 이렇게 고백하죠.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참으로 가슴 뭉클 한 기록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는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던 사람이었어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과 충돌하여 눈이 먼 사울, 사흘 후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안수를 받고 그 눈을 뜨게 되죠. 성경은 그 순간 저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우리는 그게 뭔지 모릅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가리워 졌던 비늘이 벗겨지고, 다시 보게 되었다는 현상을 이렇게 해석해 봐요. 지금껏 사울로 하여금 보지 못하도록 했던 뭔가가 거기 있었다는 겁니다. 물론 육신의 눈은 뜨고 있었지만, 꼭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게 했던 무언가가, 그 날 성령의 임재와 함께 벗겨졌습니다. 저가 변하죠. 관점이 바뀝니다. 편견이 사라져요. 고백합니다.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오늘도 믿음의 길을 걷고 계신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혹 오늘 우리들의 눈을 가리고 있는 이런 저런 편견과 교만의 비늘이 우리게 있지는 않습니까? 날마다 우리 자신을 돌아 봄으로, 교만과 편견의 비늘이 아니라 용납과 사랑의 렌즈로 세상과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해 달라고 구하십시다. “주님 우리로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하옵소서. 날마다 그 눈을 여시고 또 확장시켜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