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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삶의 초점

 

주간에 새로 교회를 방문하신 가정과 함께 식사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자연히 지나간 삶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대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분이 하신 말씀 중 한 대목이 며칠간 제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민자들은 각각 책 한 권 씩을 쓰죠.” , 수 많은 사연들이 담겨 있다는 말씀인데 참 공감이 되었습니다. 빌립보서4장은, 디아스포라의 자리에서 별일들 많았던 “사도바울의 삶이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 를 “그 인생의 초점이 늘 예수 그리스도에게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 이라 했습니다. 맞아요. 사도바울은 궁핍과 비천에서도 낙심하지 않았고, 반대로 풍부함 속에서도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요? 바로 “내게 능력주시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향한 초점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손경구라는 분의 [기쁨의 진실] 이라는 글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줄거리가 나옵니다. 한강 남쪽에 성실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배추 농사를 지으며 그런대로 평화로운 삶을 살았어요. 어느 날, 한강 이남이 서울로 편입되고 정부에서 강남을 새로운 개발지로 발표를 하지요. 자연히 넓은 땅을 가지고 있던 이 분은 한 순간 거부가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갑자기 생겨난 그 엄청난 부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술집에 드나들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그곳서 일하는 여인과 딴 살림을 차렸습니다. 아내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자식들은 제멋대로 살면서 그의 속을 썩입니다. 어느 덧 그의 가정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는 지옥과 같은 생활만 남게 되었죠. 그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마쳐집니다. 어느 날 밤, 그는 호화로운 자신의 집 지하실로 내려갑니다. 그곳에는 자신이 배추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던 시절의 그 낡은 리어카가 있었습니다. 천천히 그 리어카를 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는 한 순간, 구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절규합니다. “배추 사려 ~ 배추 사려 ~” 깊은 밤에 눈물과 회한에 섞인 그의 절규가 지하실 안에 울러 퍼집니다. “배추 사려 ~

 

이 글을 읽으면서 목사인 저는, 그 순간 그 지하실에 있는 농부의 삶 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인생의 참 소망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해주고 싶은 욕심 때문입니다. 전도서의 말씀도 전하고 싶습니다. 신명기의 말씀도 전하고 싶습니다. 나아가 빌립보서의 말씀도 전하고 싶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인생의 진정한 소망이 그 물질에 대한 부요함에 있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부요함에 있음을 꼭 말해 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정신을 차려 그 시선을 우리 유니온 가족들의 삶으로 옮겨 봅니다. 혹시 오늘 저와 여러분의 초점이, 그 불쌍한 농부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면 어찌하나? 라는 걱정도 해 봅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그 심령 깊은 곳에는 여전한 탐욕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를 되돌이켜 봐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우리 유니온 가족들 중에 ‘짧은 인생,’ 그 농부와 같이 엉뚱한데 소망을 두고 걸어가는 분이 없으시기를 기도합니다. 대신 인생의 영원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오늘 사도바울과 같이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4:12) 고 고백할 수 있는 지혜로운 청지기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즈음 저와 여러분 삶의 초점은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