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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나머지 아홉은

 

2019년 추수 감사 주일을 맞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의 인생과 가정과 교회 공동체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절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 주일 설교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야기는 예수님께 고침 받은 열명의 문둥 병자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 이야기의 한 가운데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주님의 질문이 나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저는 여기서 주님과 더 깊은 교제로 나아오지 못한 이들을 향한 주님의 안타까움을 봅니다. 주님은 당신의 서운함을 드러 내세요. 사랑했고 은혜를 베풀었는데, 아니 저들과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들이 더 오지를 않았거든요? 여러분, 우리 모두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주님의 이야기에 깊이 참여하기로 하겠습니다.


그 아홉의 변명이라는 글이 있는데, 그 작가는 감사하지 않는 이들이 댈 수 있는 많은 핑게들을 나열합니다. 주님이 그 아홉은 어딜 갔느냐?” 하셨을 때, 그들이 오지 않았던 이유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는 거예요. 첫번째 사람은 의사와 제사장에게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겠다해서 갔다는 겁니다. “나은 것 같기는 한데 정말 나았는지의심하느라 오지 못했다는 것이죠. 두 번째 사람은 재발 가능성이 있으니 며칠 더 두고 봐야겠다하면서 못 왔답니다. “은혜 받은 것 같기는 한데, 이게 진짜인가?” 신중론자죠. 그러나 실은 못 믿는 거예요. 세 번째 사람은 내 병은 본래 문둥병이 아닌 피부병이었나하고는 쓱 넘어갔어요. 회의론자입니다. 그 다음 사람은 나을 때가 돼서 나았을 거야라고 생각했답니다. 내 삶에 하나님 주신 은혜와 기적을 자연현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니죠? 또 한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밭과 재산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이젠 먹고 살아야하니…” 하고 가버렸습니다. 전에는 사느냐 죽느냐가 문제였는데, 병이 나으니 이젠 뭐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는 거죠. 또 다른 사람은 전에 같이 살았던 식구들, 특별히 아내가 수절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갔다 하고, 마지막 사람은 예수님이 특별히 해준 것이 없잖아.” 안수를 해준 것도 아니고 약을 준 것도 아니고 그저 가서 보여라만 했잖아?” 라고 말합니다. 뻔뻔한 사람입니다.


, 글쓴이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우리들의 핑계는 끝이 없다는 거예요. 이러 이러 해서, 또 저러 저러 해서 그냥 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 날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경향, 주님께 감사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들에 대한 핑계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한 사마리아인이 어떻게 했다구요? , 그는 바로 왔습니다. 그 모습 그대로요. 여러분,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그 병자의 옷을 입고 그대로 왔습니다. “이 모습 이대로, 그거면 어떠냐? 문둥병 속에 있을 때도, 주님이 나를 불쌍히 여겨 주셨는데, 이 추한 모습 그대로면 어떠냐? 빨리 가야지. 빨리 가서 감사를 드려야지…” 그래서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를 받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경험적으로 압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감사하게 됩니다. 자연히, 그 감사를 가진 이들은 충성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게 됩니다. 이는 율법주의자들의 옥죄기가 아닙니다. 대신에 이는 돌아온 탕자의 철든 자원이요 헌신입니다. 맞아요.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점에는 늘 하나님의 선험적인 은혜와 우리의 진정한 감사가 자리합니다. 2019년의 감사주일에 우리 모두 그 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진정한 감사의 주인공들이 되어 지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