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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다름은 아름답습니다

 

연말을 맞아 총회들을 하면서 새 일꾼들을 뽑고 사역들을 계획하는데, 어제 () 새벽 시간, 이어오고 있던 마가복음 19번째 설교에, 이 시기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주님의 가르침이 들려졌습니다. 제자 요한이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였으므로 금하였습니다.” 라고 말하죠. 저가 보니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사람이예요. 그래서 당신 누군데, 감히 우리 선생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는 거요? 누구 허락을 받았소? 이제는 하지 마시오.” 라고 말한 거예요. , 귀신을 쫓는 것은 귀한 일인데, 그걸 금한 기준이 뭡니까? ,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즉, “내가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 가 그 사역을 허락하고 금하는 기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의미 심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 당신을 반대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적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다양합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교우들 참 여러가지 의견들을 가지고 계세요. 어쩔 때는 깜짝 놀라기도 해요. “, 이분은 신앙이 참 특이하게 형성 되셨구나.” “, 하나님 우리를 참 신묘막측하게 만드셨구나…” 우리가 자신의 잣대로 서로를 평가하기 시작하면, 자신과 다른 그분은 늘 문제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하신 것입니다. 달라도 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동지라는 것입니다.

 

당회를 하다 보면 깜짝 놀랍니다. “저 장로님은 저렇게 생각하시는구나. 또 저분은 저렇게 생각하시는구나.” 다 달라요. 그때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거죠. 만일 저가 주님을 반대하는 이가 아니라면, 그분은 우리를 반대하는 자가 아니라는 겁니다. 대신 그분은 주님을 위하는 자라는 겁니다. 맞아요. 여러분, 한숨 돌리고 나면, 이해가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잘 모르는 분이라고, 내 생각과 좀 다르다고 , 저 분 조심 해야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그분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예수를 믿고 행동해야 한다는 법이 없죠. 대신 그분이 나와 좀 다르더라도, 그분이 주님 편에 서 계신 분이라면, 그분은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분이 내 마음에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와 다를 수 있어요. 그러나 그분이 주님을 위하시면, 그분은 내 편 맞습니다.  

 

켄터키에서 공부 할 때, 여러 인터내셔널 학생들과 함께 공부 했습니다. 그런데 각 나라와 족속마다, 하나님이 주신 문화와 언어와 가치관과 신앙 패턴이 다 달라요.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조금씩 다릅니다. 처음에는 당황했습니다. “아니 저 아프리카 친구는 귀신을 저렇게 이해 하네? 저 네이티브 인디언 친구는, 연기를 피워 놓고, 독수리 깃털을 흔들며 기도 하네? 아니, 저 파파 뉴기니 친구는 예수님에 대한 이해를 어린 양으로 하지 않고, ‘어린 돼지로 하네? 저거 저거이단 아니야?” 한참 지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한국식 신앙 패턴에 갇힌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요. 그분은 너무도 광대하신 분이시고, 그것 자체가 아름다운 분이시라는 것을요. 그렇다면 우리가 좀 달라도 됩니다. 그리고 그 다름을 아름답다는 것을 기억하겠습니다. 그 다름들이 각각의 은사로 이해되고, 함께 동역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죠.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다양한 분들과 기꺼이 동역 해 주십시오. 그게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