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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어두운 내 눈 밝히사

 

변함없이 금요 기도회와 새벽 제단을 함께 지키는 믿음의 동지들로 인하여 감사합니다. 예배당 맨 앞 자리에서 기도를 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뒤에서 기도하시는 분들의 기도 소리가 들리는데 참 감동적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사역자들을 위하여, 가족들을 위하여,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시는 그 음성을 들으면, 저의 기도에도 저절로 힘이 실려요. 기도는 하나님의 보물 창고에 있는 축복들을 이 땅으로 가지고 오는 통로입니다. 우리가 교회와, 가정과, 이웃과, 열방을 향하여 우리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 반드시 들으시고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하지만 그것 외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할 때에만, 하나님의 은혜가 진정 은혜로 다가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요? , 그 때에는 기껏해야 “운이 좋았다!” 또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정도의 이해 뿐일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인데도,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을 은혜로 볼 수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맞아요. 오직 기도하는 이들만이 오늘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움직임과 은혜를 보고 또 감사할 수 있습니다. 민수기 22장에는 발람이라는 주술사에게 “와서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고 청했던 모압 왕 발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요청임을 안 발람은 당연히 그 청을 거절하지만, 백지 수표를 제안하며 계속되는 발락의 요구에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윽고 발락에게로 향하던 발람, 순간 자신을 태우고 가던 나귀가 하나님의 사자를 보고 움직이지 않자, 영문도 모른 채 나귀를 때리기 시작해요. 바로 그 순간, 나귀가 입을 열어 “왜 때리냐”고 항변합니다. 아니 “여태껏 내가 그런 적이 있었냐”고 호통을 칩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발람의 어두워진 눈을 띄워주시고, 그제서야 그는 자신의 나귀가 자기를 죽게 하지 않기 위하여 움직이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심지어 나귀도 보는 여호와의 사자를 발람이 보지 못하고 있다니...” 그 순간, 발람은 자기가 타고 다니던 나귀에게조차 꾸지람을 듣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혹시 지금 이 이야기가 저와 여러분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행하시는 일을 우리 보고 있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행하시는, 아니 오늘 내 삶에 행하시고 말씀하시는 것, 우리 보고 듣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하나님께서는 나귀를 통해서라도 우리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따라서 우리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요즈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들려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적인 눈이 뜨여 하나님의 움직이심과 뜻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의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품고 드린 기도가 오늘의 제 기도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17-19). 저와 여러분 영의 눈이 밝아 하나님 오늘 우리게 행하시는 일과 뜻을 보고 듣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