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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내 인생 완전히 끝났네?

예수를 믿고 그분을 주님으로 고백하던 순간이 우리들 모두에게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오,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당신의 값으로 나를 되 사주신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이 주인이시고, 저는주님의 소유요 또한 종입니다.” 우리 선의를 가지고 그렇게 고백해요. 그런데순간,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이런 생각이 살짝들기도 해요. 에이~ 이젠 끝났다. 이제 죽었다. 인생은 이제 끝난 거야. 이제 인생에는 아무 낙도 없어. 나는 이제부터 종이니까, 내게는아무런 자유도 없을 거고, 재산도 빼앗길 거고, 미래도없고, 즐거움도 없을 꺼야. 이젠 천국이나 바라보고 사는 거지... , 인생 완전히 끝났네.” 여러분, 그런생각 보셨습니까? 조금 억울한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라로 부르고, 나를이라고 인정할 , 그때 하나님과 사이에 생겨나는 관계는  이제는 끝났어.” 의 의미에서의 종이 아닙니다. 대신 순간 하나님과 사이에 형성되는 관계는 아브라함과 그의 종이었던 엘리에셀 사이에 형성되던 주인과 종의 관계를 뜻합니다. 아브람이 말하죠. “내 상속자는 다메섹 엘리에셀입니다.” 사실 여러분, 구약시대 히브리인의개념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시대의 노예 개념이나, 조선시대의 머슴 개념과는 다릅니다. , 아브람이 하나님을또는주인으로 부를 종의 위치는, 그가 자기의 종 엘레에셀과 맺은 관계와 위치를 의미했어요. 당시의, 주인 종의 필요를 모두 공급해 주고, 보호해주었으며, 심지어는 매일 매일의 일과에 대하여 지시해 주기까지 하는 친근한 관계였어요. 실제로 성경을 보면, 히브리사람들에게 있어서 종은 가족 중의 사람으로 대접을 받았고, 실제로 할례를 받으면 유월절 예식에도 참여할 있었으며, 후에는,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축복에까지도 함께 참예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혹시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나의, 나의 하나님라고 고백하는 것을 주저 하신다거나, “나는 이제 죽었다. 인생에는 이상 즐거운 일이 없을 꺼야. 나는 이제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야만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 억지로, 하기싫은 일들만 일평생 해야 하는 그런 종이 부르는주인님 아니라는 거예요. 대신에우리가 부르는아도나이, 나의, 나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은, 오히려, 풍성하신 하나님이 나의 주인이 되어 주심으로, 나에게 자연히 부어질 풍성한 유익은 물론, 이제부터는주인 되신 그분께서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의미에서의아도나이그런 의미에서의주님입니다. 와아아 여러분, 정말 새로운 발견 아닙니까? 정말 엄청난 사실이 아닙니까? 그렇다면 저는 매일 그분을 아도나이라고 부르며 따를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정말로 호칭 속에 담겨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십시오. “되시는 그분이 나의 안전을 보장하십니다. 광야와 같은 인생길에서, 통장이 아니라, 자녀가 아니라,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삶을 책임지시는 주인이 되어 주신다 하세요. 바로 그 순간, 아브라함이 고백하며 부르는 것이죠. 아도나이, 나의, 나의 하나님. 나의 되신 하나님이여...” 쉽지 않은 이민자의 여정, 그분을 진정한 주님으로 날마다 고백하며 참 평화와 안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