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로그인 | 회원가입

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하찮게 여겨질까 두려우십니까?

 

지난 주간 누군가에게 급하게 전화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제 핸드폰의 목록에서 그분의 번호를 찾을 수 없었어요. 할 수 없이 그 분 카톡 ID 를 찾아 전화를 했습니다. 잠시 후 그 분, 그것이 카톡 전화라는 것을 아시고는 제 전화 번호가 없으시군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구요…” 변명은 했지만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대화하는 중에도 그분의 억양 속에 담긴 서운함이 계속 여운으로 제게 남아 있었어요. “, 김 목사님의 전화에 내 전화번호가 저장되어 있지 않구나라는 아쉬움 말입니다. 사실 저는 그게 뭔지를 잘 압니다. 저도 종종 느끼는 서운함 또는 불안함이기 때문이예요. 유력한 동역자들 사이에 있다가 문득 나만 좀 쳐지는 듯 한 느낌이 들 때, 제 안의 열등감이 살아납니다. 금방 풀이 죽죠. 반대로 어쩔 때는 좀 오버하기도 해요. 다른 이들에게 나의 존재감을 강조하거나 역설합니다. “나 여기 있어요!” 라고요. 그런데 여러분, 주님 앞에서도 그럴 때가 있죠. “혹 주님 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으시면 어떻게 하지?” 하면서요. , 우리는 모두 잊혀지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께 더 주목 받고 더 인정 받고 싶어해요. “주님 저 아시죠? 혹시 저 잊으신 건 아니시죠?”

 

순간 주님 대답하십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시리온에 팔리지 않느냐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10:29-31) 참으로 놀랍습니다. 우리는 종종 은행의 잔고를 확인하고, 성적을 확인하고, 몸무게를 확인합니다. 하지만 머리털을 확인하지는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세겠습니까? 여인들이 헤어샵을 가, 커트를 하고 파머를 하고 염색도 하면서 스타일을 매만져요. 하지만 머리털 숫자는 세지 않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신 대요.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왜요? 귀하니까요. 여러분, 우리는 모두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고민합니다. “혹 내가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하찮은 사람처럼 보이면 안되는데?” 불안해 합니다. 좋은 직장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 해도 진짜? 왜 나한테?” 불안해합니다. 너무 너무 귀엽고 예쁘고 충분히 멋진 청년인데, 자기는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래서 이성친구를 소개해 준다 해도 , 저를요?” 하면서 불안해 해요. 목사님들 가운데도 열등감에 눌린 분들이 있습니다. 너무 훌륭하신데, 그 칭찬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에이 아니예요.” 성도들 가운데도 목사님, 저는 신경 쓰지 마세요. 뭘 저까지요저는 괜찮아요.” 사랑과 관심을 부담스러워 하며 봇 받으세요. 그러면서도 잊혀질까 두려워 하시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 그러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모두 충분히 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어요. 당신은 한순간도 그 자녀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독생자 예수님까지 다 내어 주셨으니 어찌 귀하지 않겠습니까? 1 때 처음으로 유화를 그렸는데 저도 놀랄 만큼 썩 잘 그렸습니다. 금방 마르지 않으니 교실 뒤켠에 모든 아이들의 그림을 세워 두었는데 아 그걸 누가 훔쳐 갔습니다. 얼마나 아쉬운지 35년이 지난 지금도 제가 그 그림을 잊지 못합니다. 이유는 하나, 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을 하찮게 여기실까, 중요치 않게 여기실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2:10) 기억하세요.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명작입니다. 그분은 저와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너무도 귀하게 여기시는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사실이 큰 격려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