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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이해가 덜 될때 까지라도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채나라로 가던 도중 양식이 떨어져 굶주림으로 고생했습니다. 지친 그들 어 마을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는데, 공자가 잠이 들었을 때, 제자 안회가 나가 쌀을 구해와 밥을 지었습니다. 밥이 무렵 공자가 잠에서 깨어, 힐끗 부엌을 내다는데, 제자 안회가 밥솥의 뚜껑을 열고 밥을 한 움큼 집어 먹는 것이 보였습니다. 안회는 평상시에 내가먼저 먹지 않은 음식에는 수저도 대지 않았는데 이것이 웬일일까? 지금까지 안회의 모습이 거짓이었을까?공자가 의야해 합니다. 밥상이 들어온 후, 그를 가르치기 위해 공자가 입을 열었습니다. 안회야, 내가 방금 꿈속에서 선친을 뵈었는데 밥이 되거든 먼저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라고 하더구나.그가 먼저 밥을 먹은 것에 대하여 마음에 찔림이 있도록 하려 했던 것이죠. 

 

하지만 안회의 대답은 공자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스승님, 이 밥으로 제사를 지낼 수는 없습니다. 제가 뚜껑을  순간 천정에서 흙덩이가 떨어졌습니다. 스승님께 드리자니 더럽고 버리자니 아까워서 제가 부분을 그만먹어버렸습니다. 죄송합니다. 공자는 잠시 안회를 의심한 것을 후회하며 다른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 나는 나의 눈을 믿었다. 그러나 나의 눈도 완전히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예전에 나는 나의 머리를 믿었다. 그러나 나의 머리도 역시 믿을 것이 못되는구나. 너희들은 알아 두어라.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예, 우리의 삶에도 종종 일어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다 보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한 채로, 너무 쉽게 다른 이들을 판단하고 채점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우리게 요한의 삶은 놔두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해가 덜 되더라도 순종의 발걸음을 떼라고 주님 요구하십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아나니아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사울에게 안수하여 기도함으로 그 눈을 다시 보게 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입니다. 당황하며 저가 다시 묻습니다. 사울이라고요? 아니 그 흉악한 인물, 사울에게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쳐 넣는다는 그 사람 말입니까? , 아나니아는 그 사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만 보고서 자기의 생각을 말한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세히 설명하시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니 당신 그럴 의무가 없으시죠. 대신 명하십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아나니아 그날의 순종은 세상을 향한 복음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실 성경은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하여 다 알지 못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그랬는지, 현재 상황이 어떤지…”그래서일까요? 성경은 우리게, 쉽게 채점하고 판단하고 포기하는 일을 하지 말라 하십니다. 대신 우리게 해야 할 일을 하라 하십니다. 그것은 선대 입니다. 주께 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며 형들을 맞이합니다. 다윗도 하나님 때문에 사울왕을 선대합니다. 호세야 또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 아내 고멜을 받아들입니다. 주님은요? , 두말할 나위가 없죠. 배반한 베드로를 용서하셨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선대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까지도 구원하셨습니다. 아니 당신은 비꼬고 모욕하는 그의 친형제들마저 인내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초대교회의 기둥들이 되었습니다. , 우리 할 일은 이해가 덜 될때까지라도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