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   

로그인

   |   

회원가입

   |   

사이트맵

로그인 | 회원가입

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삶의 초점
5월을 열면서 “가정 사역”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이번 주일은 어린이 주일로 지키면서 차세대부가 교회 앞 공원으로 “소풍”을 다녀오고, 다음 주일은 어버이 주일로 “영상편지 및 선물들” 을 준비합니다. 셋째 주간에는 “부부 데이트 데이”를 준비했고요, 마지막 주에는 “유니온 가족 사진 촬영 이벤트”를 진행하겠습니다. 이어 어르신들을 위해 한달 정도 “은빛 대학” 을 개강할 준비도 하고 있어요. 예, 이 사역들을 통해 유니온의 모든 세대가 성숙을 향해 나가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죠? 바로 우리 모든 세대의 초점이 변치 않는 분 “예수님” 에게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사도바울은 “어떤 환경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 삶의 이유” 를 “인생의 초점이 늘 예수님께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 이라 했어요. 맞습니다. 그는 심한 궁핍과 비천에서도 낙심하지 않았고, 풍부함 속에서도 교만치 않습니다. 이유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예수님 그분에게 늘 그 인생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손경구라는 분의 [기쁨의 진실] 이라는 글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의 줄거리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강 남쪽에 성실한 농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배추 농사를 지으며 나름 평화로운 삶을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한강 이남이 서울로 편입되고 정부에서 강남을 새로운 개발지로 발표합니다. 자연히 넓은 땅을 가지고 있던 그 분, 한 순간 거부가 되었죠. 하지만 불행하게도, 갑자기 갖게 된 엄청난 부를 주체하지 못했습니다. 술집에 드나들게 되었고, 얼마 후에는 그곳서 일하는 여인과 딴 살림을 차렸어요. 아내도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고 자식들은 제멋대로 살면서 그의 속을 썩입니다. 어느 덧 그의 가정은 완전히 무너져요. 비록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육체적, 정신적으로는 지옥과 같은 생활만 남게 된거죠. 그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렇게 됩니다. 어느 날 밤, 그는 호화로운 자신의 집 지하실로 내려가요. 그곳에는 자신이 배추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던 시절의 그 낡은 리어카가 놓여 있었죠. 천천히 그 리어카를 만지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는 한 순간, 구슬픈 목소리로 이렇게 절규합니다. “배추 사려 ~ 배추 사려 ~” 깊은 밤에 눈물과 회한에 섞인 그의 절규가 지하실 안에 울러 퍼집니다. “배추 사려 ~”

오늘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물론 삶의 정황은 다르지만 “혹시 오늘 우리들의 초점이, 그 불쌍한 농부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해 봅니다.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있는 그리스도인이지만 그 심령 깊은 곳에는 여전히 탐욕의 노예로 살고 있는 분은 없으십니까?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저는 유니온 가족들 중에 ‘짧은 인생’ 그 농부와 같이 엉뚱한데 소망을 두고 사는 분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대신 인생의 영원한 소망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사도바울처럼,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 4:12) 고 고백하는 청지기들과 가정들이 되시기를 바래요. 요즈음 우리들 삶의 “진정한” 초점은 어디에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