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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아합 증후군?

 

열왕기상 18장은 저 유명한 갈멜산의 영적 전투 직전, 엘리야 선지자와 아합 왕이 만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재미있는 일 하나가 벌어지는데요, 그것은 아합 왕이 엘리야를 만나자 마자 불렀던 호칭에 대한 것입니다. 아합이 외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지금 누가 누구를 탓하고 있습니까? , 아합이 엘리야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럴 수 밖에요. “철없는 선지자가 못된 기도를 하는 바람에, 바알 신이 노하여 비가 오지 않게 된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것이다.” 여러분, 이게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아합은 아무리 환란을 당해도 깨닫지를 못합니다. 늘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너 때문이다. 엘리야 너 때문이다.

 

70년대에 “고교얄개” 라는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거기 나오는 장면이죠. 얄개가 쉬는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친구의 안경에 빨간 색칠을 해 놓고는 “불이야” 소리를 질러요. 한바탕 큰 소동이 벌어지죠. , 빨간 색 안경을 끼면 다 빨간 색으로 보입니다. 똑같아요. 다른 사람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그 바알 신이라는 안경을 끼고 있던 아합 왕에게 있어, 지금 엘리야가 행하는 모든 일은 다 빨간색입니다. 자기가 잘못된 안경을 끼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합니다. 거기서 나온 책망이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너냐?” 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던 자였죠.

 

그런 경험 없으십니까? 나는 저가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내가 문제였던 경우 말입니다. 나는 “저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다” 라고 하지만, 실상은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던 자” 였습니다. 매년 돌아오는 결혼 기념일마다 우리의 결혼 생활을 돌아봅니다. 사실 숱하게 싸웠어요. 그런데 요즘은 싸우는 일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유가 있죠. 남편인 제가 철이 좀 든 것입니다. “우리 가정을 괴롭히는 자여” 여러분, 한 때 제가 제 아내를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가정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내 인생을 괴롭게 만든 자여 너냐?” 그런데 어느 날 철이 들면서 깨달은 거예요. “우리 가정을 괴롭히는 자는 저 사람이 아니라 따로 있더라구요.” 누구입니까? , 저였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여? 너냐?” 아닙니다. 저만 모르고 다 알아요. “나입니다.

 

가정에서도 배우자 때문에, 자녀 때문에, 부모 때문에, 그래서 괴롭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상은 내가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라는 겁니다. 친구는요? 교회는요? 나라는요? 그 구절을 읽으면서 한참을 그 질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혹시 문제는 나에게 있는데, 다른 이를 보고 그 질문을 던지고 있지 않는가? 라면서 말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먼저 우리 자신을, 우리 가정을, 교회를, 자녀를, 친구를 보는 눈을 점검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 먼저 나 자신에게 외쳐 보십시오. 그때 알게 됩니다. 대부분은 내가 문제더군요. 아합 증후군을 잘 다루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