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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죽으면 끝이야?

요즈음 주일에는 “믿음의 선진들 시리즈” 설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 주간부터 금요일 저녁 집회에는 “여호수아서 강해” 설교를, 그리고 토요일 새벽 예배 때에는 “축복의 여정 시리즈” 설교를 진행합니다. 특별히 “축복의 여정 시리즈”는 우리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이야기들을 나누어 보려 하는데요, 첫 시간 “영생의 선물” 이라는 복음에 관한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 우리 인생의 시작과 끝을 다시 한번 더 되돌이켜 볼 수 있게 되어 참으로 유익했습니다.

 

문득 “죽으면 끝이야” 라고 우기던 분들이 생각납니다. 아무리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하여 진지해지셨으면 하고 권해도 참 가볍게들 대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대화를 시도해도 진지함 보다는 다른 곳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며 문제의 본질을 피해가곤 하시는 분들 말입니다. 참 안타깝죠. 조선 시대에 “정만서” 라 이름 하는 분이 죽을 때, 그 머리 맡에 앉아있던 친구가 물었답니다. “죽음이 무엇이냐?” 죽는사람이니까 뭘 좀 알까해서 물은 질문이었는데, 이분의 익살스러운 대답은 “처음 겪는 일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였답니다. 페루지노라는 화가도 자신의 임종을 위해 성직자가 달려와 마지막으로 기도를 해주려 할 때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는 회개하지 않고 죽는 사람이 저 세상에서 어떻게 되는지를 알고 싶소.” 참으로 패역한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한 사람이 바로 그입니다.

 

문제는 저들 중 그 누구도 바른 해답을 쥐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압니다. 그 해답은 오직 우리를 이 땅에 내신, 주인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그분께서 말씀하십니다. “남은 날을 계수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 “지금은 이 땅을 딛고 살지만 항상 죽음 저쪽의 문제를 유념하고 살라.” 따라서 여러분, 누군가가 죽음에 대하여, 그리고 그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하여 물을때, “글세... 나도 잘 몰라.” 라고 대충 대답하지 마십시오. 죽음 이후에 대한 분명한 그림을 준비하고 살아 가십시오. 누가 압니까? 그때 그의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 그분의 영혼을 하나님의 영원과 맞닿을 수 있도록 만드는 기회가 될 지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우리게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 의 영생이라고 말입니다. 이런 면으로 기독교는 분명 ‘독선적’입니다. 하지만 참 진리는 늘 그렇습니다.

 

 

 

로댕의 [생각하는사람] 이라는 조각상을 기억하시죠? 그 상은 단테의 [신곡] 중에 지옥편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그 지옥 문 위에 자리하고 있는 상을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는 넌센스죠. 왜냐하면 누군가가 그곳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는 더 이상 고민할 기회가 없기 때문입니다. 너무 늦은 것입니다. 대신 오늘 이곳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믿고, 여러분, 유치하다고 외치는 이들에게 기죽지 마십시오. 관심없다고 외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부인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 사이에 결코 닿을수 없는 큰 간격이 있음을 믿습니다. 한 사람은 천국에서의 영생이고 또 한 사람은 지옥에서의 영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