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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 목회칼럼

담임목사 목회칼럼

베냐민의 은잔

하나님의 섭리아래 애굽의 종으로 팔려왔던 요셉은 긴 인내의 시간을 거쳐 결국 애굽의 국무총리로써 형들과 재회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의 정체를 싱겁게 드러내지 아니하고 끝까지 형들과 줄다리기를 하면서, 그 과정 속에서 형들 또한 “파렴치한 형제들” 에게서 “회개하고 성숙한 열두지파의 시조들” 로 변화시켜 냅니다. 정말로 구약의 요셉은 신약의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특별히 죄인들을 용서하시고 변화시키셔서 당신의 일꾼으로 세우시는 일에 관한한 더욱 그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인생에 만나게 되는 사람들 가운데 혹시나 나를 너무도 힘들게 했기에, 그 상처로 인하여 관계가 틀어져 있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버렸던 저 형제들처럼 말입니다. 그때 여러분들께서 그날의 저 요셉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놀랍게도 요셉은 악한 형들을 끌어안음으로  결국 그들로 하여금 성숙된 존재가 되게 합니다.  

 

그 감격적인 순간,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하신 아름다운 이미지가 하나 등장합니다. 그것이 바로 “베냐민의 은잔” 입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요셉의 지시로 베냐민의 식량 자루 속에 은밀히 감추어진 은잔” 이 그것이었습니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두번째로 애굽에 내려왔던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선대를 받고 다시금 아버지 야곱에게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곧 추격자들이 미치고 사라진 은잔을 찾기 위해 수색을 당하게 되죠. 형제들은 의기 양양하게 외쳤습니다. “그럴리가 없다. 우리는 결백하다. 만일 우리 중에 누군가에게서 훔친 은잔이 발견된다면 우리가 모두 당신들의 종이 되겠다!” 하지만 곧 그들의 얼굴이 굳습니다. 막내 베냐민의 자루에서 그 은잔이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숨을 쉬며 다시금 애굽 땅으로 돌아가야 했고, 다시금 요셉 앞에 두려움으로 서야 했습니다. 바로 그 순간 여러분, 그들의 심정이 어떠하였을까요? 그 요셉 앞에 섰을 때 그들이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형제들은 놀라운 비약을 경험하죠. 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서 있는 베냐민을 탓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저들의 결백을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참 감동적입니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누가 자신들의 죄악을 적발했다고요? 예, 그들은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이십년 전부터 그날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그 죄악이 실토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예, 한순간 그들 모두가 하나님 앞에 섭니다. 그러고 나서 비로로, 회개와 용서와 화해가 실현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근간을 이루어야 할 그들의 정체성이 회복되었습니다. 

 

 

자, 그런 의미로 여기 저 “베냐민의 은잔” 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도구였다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 너무 황당한 “은잔” 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설명도 안됩니다. 기막힘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니, 그 은잔은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의 통로였다는 것입니다. 혹시 오늘 우리들의 인생에는 그런 “베냐민의 은잔” 이 없습니까? 그 시험이나 그 어려움은 혹시 하나님께서 나와 줄다리기를 하기 위한 “은잔” 이 아닐까요? 하나님이 일부러 숨겨 놓으신 그“은잔” 말입니다. 혹시 오늘 여러분의 삶에는, 그 일로 인하여 하나님을 무시하지 못하고 또 그분을 떠나지도 못하게 하는 일이 자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은잔은 축복입니다. 이제 우리 할 일은 그 은잔을 도구로 하여 다시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 앞에” 다시금 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