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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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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목회서신 /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

2015년 목회서신 한 방향으로의 오랜 순종

 

* 아래의 글은 2014년 연말, 갑작스러운 교회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치리목사님에게 보내 드렸던 자기 소개서입니다.  


        저는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평북 선천에 신앙근거를 두신 실향민 출신 아버님 (김병순 장로/현 인천 거주) 당시 고아들을 섬기는 일을 하시던 어머님 (고 김영숙 권사사이에 태어나 자라났습니다. 자연히 기독교 신앙과 가치관은 제게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헌신 또한 일찍부터 인생을 드릴 수 있는 가장 의미있는 ” 로써 다가왔었습니다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어린 시절 목회에 대한 동경을 품은 저를 학창 시절,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하고 ( 15:16) 의 말씀을 통하여 불러주셨고, 이후 서울신학대학교의 신학과 과정을 통해 목회자 수업을 시작하게 주셨습니다.


          한국 학업 목회

          이대 독자로써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의무감은 그분들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들을 경험하면서 자연히 하늘 아버지 은혜의 손길을 의지하는 것으로 바뀌어 갔고, 신학교 졸업 즈음 세웠던 유학에의 꿈은, 졸업반 마지막 달에 있었던 은퇴하신 목사님들의 도전들 때문에 순수를 찾아 떠난 년간의 강원도 산골 목회로 대치되었습니다졸업 직전 결혼했던 아내도그것이 목회자의 길이려니 하고 순순히 교직생활을 접고 강원도 길에 동행해 주었고, 그리하여 저는 강원도 횡계의 대관령 교회와 탄광촌 태백의 태백동부교회에서 목회자로써의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산골에서의 사역기간동안 하나님께서는 없이 교만했던 종을 철저히 낮추셨고, 명의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 가치를 알게 하셨습니다. 이후 당신께서는 년여간 묻어 두었던 유학에의 꿈을 다시금 회복시켜주셨고, 대학원 (MA) 을 마치고 목사 안수를 받는 어간에 삼각산 꼭대기에서 드렸던 기도를 통해, 최종적으로 제게 이렇게 도전하셨습니다. 유학을 가겠다구? 하려고 그러는데? 그때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버지! 어줍사리 학위 따서 재며 사는 인생이 아니라, 그것 선한 도구로써 하나님 나라의 통로로 사용하는 인생을 살겠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되, 그것 하나님 앞에 내려놓겠습니다. 절대로 개인의 영달을 위한 공부 하지 않고, 대신 제 삶과 신앙인격을 다듬는 공부, 또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준비하는 공부를 하겠습니다. 또 앞으로 무엇을 시키시든, 통해, 저를 드러내지 않고, 대신 잃어버려진 영혼들이 주님을 알게되고, 제대로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는 , 그 일에 제 인생드리겠습니다. 

 

         캐나다 유학 목회

         이후 하나님께서는 독일이나 이스라엘에서의 학업을 준비하고 있던 저를 캐나다 캘거리 땅으로 보내셨고, 그곳에서 특별히 이민자들을 위한 목회와 학업, 그리고 이민자들과 함께 하는 선교를 경험케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당신께서는 넓은 세상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하셨고, 동시에 좁았던 시각을 열어 주셨습니다. 한국에서 섬길 처음 접했던 선교지들 (동남 아시아) 제게 다른 세상에 대한 눈을 뜨게 주었다면, 다중문화 속에서의 사역 (북미와 중앙아시아) 은 구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 7) 꾸고, 그 일을 향해 삶을 드릴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가 년 개월 동안 교육목사로 섬겼던 캐나다의 공동체는 그 당시 26 교회 전통이 있었지만 교회학교 시스템이 든든히 세워지지 못했던 전형적인 이민교회였고, 그곳에서 새로이 교육 부서들을 셋팅 하는 , 그 교육시스템이스스로 자생능력을 갖출수 있도록 사람들을 세워 훈련시키는 일, 그리고 교회 성장과 맞물려 필요했던 교회 평신도 리더들을 양육하는 등을 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중 큰 교회부흥을 목도하는 은혜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어간에 저는이민자의 다음세대를 품기 위해서라면 북미 시스템에서의 교육기회가 번 더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고 Canadian Southern Baptist Seminary 에서 기독교 교육으로 대학원 과정 (MRE) 을 한번 더 진행하였습니다또한 그 도시에 와 있던 다양한 민족들과 그들의 교회 지도자들과 함께 일하는 경험을 하면서, 그것 통해 - 주로 학원 사역 (캘거리대학교, 마운트 로얄 대학) 과 캘거리의 Asian Christian Connection 사역 - 인종과 문화를 초월하여 함께 손잡고 일하는 것의 아름다움과 곳에서 발생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시너지를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한국목회에 이은 육년 이개월 간의 캐나다 목회는 명의 나그네, 이민자로써의 삶에 대한 성찰의 과정이었음과 동시에,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움직이 열방을 향한 한인 디아스포라의 선교적 역량과 책임을 느끼게 해 준 기회였다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의 눈을 여셔서, 우리의 한국적인 기독교의 저력, 그리고 이민자로써의 디아스포라 경험속에 담아 놓으신 하나님나라를 위한 잠재력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미국 유학을 결정하는 실제적인 이유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 유학 목회

         특별히 2003 여름, 미래의 진로에 대하여 고민하며 기도하던 , 하나님께서는 제 안에 뚜렷한 생의 이슈 가지를 재발견하게 주셨습니다: 하나는 한인 디아스포라와 이민교회 이고, 하나는 그들을 통한 세계 선교입니다. 그리고 일을 위해, 다양한 문화 상황속에서의 사역에 대하여 번 더 공부를 해야하리라는 바램하에, 또 다시 미국 유학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미 충분히 정착하였고 또 나름대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었던 캐나다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또 번 나라를 바꾸는 유학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저희 가정은 또 한번 뛰는 가슴을 붙잡고, 유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미국땅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유학이라는 광야의 시간을 영적인 어드벤쳐가 되게 하심으로, 당신의 선하심과 그 방향의 옳음을 확증해 보여주셨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공부하게 된 곳은 켄터키주의 Asbury Theological Seminary 였고, 학위 과정 중에 제가 집중하게 분야는 Intercultural Study/Missiology  였습니다. 처음부터 이민자와 이민교회를 염두에 두고 시작한 공부였기 때문에, 학업은 무척 재미 있었고, 학업의 주제는 우리들의 이민자 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통해서, “한인이민자(이민교회) 들의 이민자됨이 하나님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탐구하는 것이었습니다. 코스웍을 마치고 학위논문 지도는 세계적인 석학이신 Dr. Howard A. Snyder 께서 진행 주셨고, 논문은 북미 한인이민자들을 위한 상황화 선교신학 (Korean Immigrants and Their Mission: A Study of Essential Themes for A Contextualized Mission Theology (2008) 을 쓰고 졸업 (D.Miss) 했습니다.  소고는, 북미에 있는 한인디아스포라의 선교적 정체성을 역사적, 성서적, 신학적, 사회문화적, 그리고 선교적 측면에서 살펴 결국, 하나님께서 우리 한인 이민자들 안에 담아 놓으신 선교적 잠재력을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코스웍을 마치고 리써치과정 중에 저는 당시 Wycliffe International Asian Diaspora Director 로 섬기던 선교사님을 통하여, 위클리프의 Mission Mobilizer 선교사로 허입과정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의 학업 주제가, 바로 그 디아스포라들을 동원하고 훈련하여 세계선교를 위해 섬기는 일에 적절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와중에 갑자기 달라스연합교회라는 곳에서의 부르심이 임했고, 전통적인 이민교회를 선교적 교회로 세우는 일을 꿈꾸며 부임하여 섬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지난 팔년 반 동안 섬긴 달라스연합교회는 텍사스 주의 첫번째 교회로써 당시 40주년 (현재 49주년) 오래된 교회였고, 자연히 전통적인 문화와 분위기가 주도하는 고연령층의 가족들로 구성된 교회였습니다. 쉽지 않았던 상황,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시간동안 많은 간증들과 부흥을 경험하게 되었고, 특별히 전통적인 이민교회가 선교적 교회 (Missional Church)  향하는 과정을 통과하면서 많은 배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현재는 모든 연령층이 골고루 부흥되어,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가장 기쁜 일, 지난 몇해 동안 교회 교회 공동체 내에서 다섯가정의 파송선교사를 세워 파송하는 일도 경험하였습니다.  

           

         이민 목회자로써 오늘 저는

         지금까지의 짧은 인생을 돌이켜 , 저는 늘 무엇을 하는가?라는 Doing 문제를 우선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늘 제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Being 문제로 재도전 하시곤 하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제게 내가 채워서 놓는 그릇이 아닌 당신께서 채우실수 있는 그릇을 요구하시곤 하셨습니다. 그리고 도전들이 저로 하여금 강원도 행과 캐나다 , 그리고 미국행을 가능하게 했던 떠남에 익숙한 삶을 살수 있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저는 그렇듯 떠난 사람들, 이민자들과 함께 목회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민자의 삶을 축복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저를 순례자로 부르셨고, 이민자의 변두리 경험을 통해 많은 것들을 담아 주셨으며, 결국 하나님의 샬롬을 삶과 목회를 통해 구현하기를 원하신다 믿습니다. 이런 이유로, 오늘 기도제목은 조금 추상적인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버지의 눈과, 아버지의 마음과, 아버지의 을 나 갖게 주옵소서 가 그것입니다. 짧은 인생 달려오며, 수없이 많은 한눈을 팔아왔지만, 결국 하나님의 다루시는 손길 하에, 오늘 제가 고백하게 되는 것은, 주인 앞에서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는 인생 되기 위해, 내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의 눈으로 세상과 영혼을 보며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들을 느끼고아버지의 꾸시는 꿈을 내가 꾸며,' 나아가 아버지께서 품고 계신 비전을 내가 소유할 오직 그때만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 인생의 굵직한 선택을 해야 했을 , 은사꼐서 해주셨던 조언을 오늘도 잊지 않습니다. 종은 주인 원하는 하는 사람이지, 자기 원하는 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늘도 저는 눈을 크게 뜨고, 주인되신 그분께서 무엇을 행하고 계시며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지를 분별하려 쓰며 걸어가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